미국 편의점 계산대 옆 작은 매대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종이 스틱이 놓여 있다. 안에는 낱개로 하나씩 종이에 감싸인 말랑한 사각형 사탕이 들어 있고, 라벨에는 딸기, 청사과, 망고 같은 익숙한 과일 이름이 적혀 있다. 잔돈으로 집어 드는 가격, 그리고 그 아래 성분표에는 ‘진짜 과일 퓌레와 과즙, 인공 색소 무첨가, 글루텐 프리, 콜레스테롤 프리’ 같은 요즘 미국 소비자가 좋아하는 단어가 조용히 붙어 있다. 이 작은 물건의 이름이 하이츄(Hi-Chew)다. 일본 캔디의 얼굴로 2008년 미국에 들어와, 지금은 편의점 매대와 Z세대의 굿즈 서랍을 동시에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다.
2008년의 첫 걸음, 낯선 사탕의 조용한 결정
모리나가의 하이츄(Hi-Chew)가 미국에 정식으로 발을 들인 건 2008년이다. 그때만 해도 미국인 대부분에게 이 사탕은 ‘일본 여행에서 사 온 무언가’에 가까웠다. 초콜릿과 젤리, 츄잉껌으로 나뉜 미국 캔디 매대에서, 낱개로 하나씩 포장된 오래 씹히는 과일 사탕은 어느 칸에 놓아야 할지조차 애매한 물건이었다.
이 시점의 결정 하나가 이후 방향을 정했다. 하이츄(Hi-Chew)는 자신을 낯선 카테고리로 소개하지 않았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거나 화려한 스토리를 앞세우는 대신 ‘chewy fruit candy(씹히는 과일 사탕)’라는 아주 단순한 표현을 붙였고, 진짜 과일 퓌레와 과즙을 쓴다는 점을 성분표에 담담히 적어 두었다. 광고 캠페인 대신 제품 자체가 자기 설명이 되도록 한 것이다.
첫 균열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일어났다
진짜 흥미로운 사건은 2010년 무렵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벌어졌다. 이 지역 판매가 갑자기 뛴 것이다. 이유를 뒤늦게 알아보니,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미국인들이 현지에서 익힌 하이츄(Hi-Chew)를 친구와 가족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브랜드가 광고로 만들지 못한 열기를, 한 지역의 커뮤니티가 자기들끼리 만들어 낸 셈이다.
보통의 회사라면 이런 지역적 이상 현상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흘려보냈을지 모른다. 모리나가의 결정은 달랐다. 이 자연 발생적 수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유통 확장의 신호로 읽었다. 편의점, 슈퍼마켓, 대형 마트, 드럭스토어 같은 미국의 주류 채널로 하나씩 문을 열어 갔고, 2015년에는 미국의 대형 편의점 유통사인 해럴드 레빈슨 어소시에이츠(Harold Levinson Associates)로부터 ‘올해의 캔디 벤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 식품 코너의 이국적 물건에서, 미국 편의점 계산대의 익숙한 얼굴로 자리를 옮긴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 미국의 매대에 맞추다
같은 시기 또 다른 결정이 겹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자체 생산 시설을 세운 것이다. 이 공장에서 처음 선보인 제품 중 하나가 미국 소비자를 겨냥한 14온스 대용량 봉지였다. 스틱 하나로만 팔던 브랜드가, 파티 테이블이나 오피스 간식으로 한꺼번에 놓을 수 있는 형태를 준비한 셈이다.
패키지도 다시 그렸다. 매대 위에서 눈에 잘 띄도록 색과 로고의 위계를 정리했고, 이 리디자인은 2020년 글로벌 닐슨 베이시스 디자인 임팩트 어워드 수상으로 이어졌다. 낱개 사탕 한 알에도 미국 매대의 문법을 그대로 맞추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런 결정들이 쌓여, 2012년 약 800만 달러 수준이었던 미국 매출은 2021년 1억 달러를 넘어선다.
Z세대의 굿즈가 되기까지
1억 달러를 넘긴 다음의 하이츄(Hi-Chew)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탕 회사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신을 다시 정의한 것이다.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론리 고스트(Lonely Ghost)와 협업 굿즈를 냈고, 팬 커뮤니티 ‘츄 크루(Chew Crew)’를 만들어 리워드 프로그램과 오프라인 이벤트로 연결했다. 2024년 초에는 자사 DTC 이커머스 사이트를 열어, 사탕과 후드티와 한정판 굿즈를 같은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게 했다.
결과는 회사가 공개한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전체 브랜드 인지도는 2018년 31퍼센트에서 2025년 62퍼센트로 올랐고, 18~24세 여성 인지도는 79퍼센트에 이른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사탕을 ‘사서 먹는’ 브랜드가 아니라, 굿즈를 사고 이벤트를 찾아가는 ‘따르는’ 브랜드로 옮겨 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하이츄(Hi-Chew)의 미국 여정을 한국 브랜드 입장에서 다시 읽어 보면, 몇 가지 결정이 눈에 남는다. 첫째, 낯선 카테고리를 억지로 설명하려 하지 말고 이미 익숙한 언어의 옷을 입히는 편이 낫다. ‘chewy fruit candy’라는 단순한 표현 하나가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둘째, 지역에서 자연 발생한 팬덤을 데이터로 진지하게 읽는 태도가 중요하다. 솔트레이크시티의 이상한 급성장을 흘려보내지 않았기에, 편의점 유통이라는 큰 문이 열렸다. 셋째, 제품이 자리를 잡으면 브랜드는 굿즈와 커뮤니티로 확장될 수 있다. 사탕조차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면, 화장품이나 식품, 잡화 브랜드가 못 할 이유는 없다.
결국 하이츄(Hi-Chew)가 미국에서 통한 건 새로운 사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매번 다시 정의한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아시아 식품 코너에서 편의점 매대로, 편의점 매대에서 Z세대의 굿즈 서랍으로. 결정의 순서가 매출을 만들었다.
참고 자료
- Marketing Dive: Hi-Chew’s lifestyle marketing strategy helps it savor US growth
- Columbia Business School: How Hi-Chew Successfully Localized a Global Brand for the U.S.
- Chief Marketer: How Hi-Chew Targets Gen Z Shoppers With In-Person Activations
- Morinaga America: Morinaga America Company 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