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로드 버튼 옆에 붙은 가격은 0달러였습니다. 설치 용량은 게임기용 대작에 가까웠고, 실행하자마자 나오는 오프닝 영상은 극장에서 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들인 것이었습니다. 무료라는 표시와 화면에 보이는 것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커서, 처음 접한 미국 이용자들은 “이게 정말 공짜인가”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원신(Genshin Impact)의 미국 이야기는 이 어긋남에서 시작합니다.
돈은 나중에 오갑니다. 캐릭터와 무기를 확률로 뽑는 가챠(gacha) 방식이라, 게임을 켜는 데는 한 푼도 들지 않지만 원하는 캐릭터를 손에 넣으려면 지갑을 열게 됩니다. 진입은 완전히 열어 두고, 지출은 애착이 생긴 다음에 발생하도록 설계한 구조입니다.
먼저, 무료라는 말의 뜻을 바꿨다
미국 시장에서 무료 게임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그리 좋은 뜻이 아니었습니다. 광고가 붙어 있고, 조작이 단순하고, 짧게 즐기고 지우는 것. 무료라는 단어 자체가 기대치를 낮추는 신호로 작동했습니다.
원신(Genshin Impact)이 내린 첫 번째 결정은 그 기대치를 정면으로 배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픈월드 액션 RPG, 그러니까 넓은 지역을 직접 걸어 다니며 탐험하고 오래 성장시키는 형식을 택했고, 완성도는 유료 콘솔 게임에 준하는 수준으로 맞췄습니다. 관련 분석들이 이 브랜드의 핵심 우위로 반복해서 꼽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료로 들어오는데 유료처럼 보인다는 것.
이 결정이 영리한 이유는 마케팅 비용을 아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도의 문턱을 0으로 만들면서도, 제품을 만난 순간의 인상은 오히려 높였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싸게 팔면 싸 보이고, 비싸게 팔면 안 사 봅니다. 이 게임은 그 교환을 거부했습니다.
휴대폰 게임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한 순간
두 번째 결정은 출시 방식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모바일 게임이라는 통상적인 경로를 따르는 대신, 처음부터 모바일과 PC,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멀티플랫폼 타이틀로 내놨습니다. 국내용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 국제적인 크로스플랫폼 타이틀로 자리를 잡은 셈입니다.
미국 이용자에게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거실 텔레비전에 연결된 콘솔에서 돌아가는 게임과 지하철에서 켜는 휴대폰 게임은 머릿속에서 아예 다른 서랍에 들어가 있습니다. 같은 게임이 양쪽 서랍에 동시에 들어가면, 어느 쪽 이용자에게도 “그건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할 근거가 사라집니다. 친구가 콘솔로 하는 걸 보고 자기 휴대폰에 받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미국 유통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는, 이 게임이 특정 소매 채널이나 한 기기 생태계에 기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러 분석은 개발사가 하나의 스토어에 의존하지 않는 옴니채널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합니다. 어느 한 곳이 막혀도 다른 문이 열려 있는 구조입니다.
광고보다 캐릭터가 먼저 움직였다
세 번째 결정은 무엇을 광고 소재로 쓸 것인가였습니다. 게임 광고는 대개 기능을 보여 줍니다. 전투가 얼마나 화려한지, 지도가 얼마나 넓은지. 원신(Genshin Impact)은 그 자리에 캐릭터를 놓았습니다.
한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집행된 광고는 사실상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집중되어 있었고, 소재는 영화 같은 예고편과 실제 플레이 장면, 그리고 캐릭터 중심의 광고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캐릭터는 광고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수익의 축이기도 합니다. 기간 한정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곧 그 시기의 매출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폭발이 일어납니다. 광고가 캐릭터를 보여 주면, 커뮤니티가 그 캐릭터를 가지고 놉니다. 팬아트, 해석 영상, 뽑기 결과 공유, 유튜브와 레딧과 틱톡의 토론. 여러 분석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은, 창작자와 커뮤니티가 새 캐릭터나 예고편이 나오는 순간 이 게임을 광고 캠페인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 바꿔 놓는다는 점입니다. 회사가 만든 것은 캐릭터 한 명이고, 이용자들이 만든 것은 그 캐릭터를 둘러싼 수천 개의 콘텐츠입니다.
다만 플랫폼별로 어디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미국 기준으로 수치화한 신뢰할 만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순위를 매기는 건 추정에 가깝고, 확실한 건 여러 채널이 동시에 굴러갔다는 사실입니다.
끝나지 않는 업데이트라는 약속
네 번째 결정은 출시 이후에 대한 것입니다. 이 게임은 완성품을 팔고 끝내는 대신, 새 캐릭터와 이벤트, 지역을 계속 추가하는 운영 방식을 택했습니다. 업계에서 라이브옵스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건 관심을 주기적으로 되살리는 장치입니다. 잊을 만하면 새 캐릭터가 나오고, 그때마다 커뮤니티가 다시 달아오르고, 지출도 다시 발생합니다. 한 번 사면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몇 주 단위로 다시 만나는 관계가 됩니다.
미국이 이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습니다. 한 분석은 전체 매출 가운데 약 20%가 미국에서 나왔고 중국이 약 30%, 일본이 약 23%였다고 정리했습니다. 다른 조사에서는 2023년 기준 미국 비중을 10.9%로 집계하기도 했는데, 연도와 산출 방식이 달라 숫자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국가별 비중은 대체로 외부 분석기관의 추정치라, 정확한 값보다는 미국이 이 게임의 핵심 시장 중 하나라는 방향성으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회사 이름이 미호요에서 호요버스(HoYoverse)로 바뀐 것도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하나의 게임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세계관을 운영하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자기 정의를 넓힌 신호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원신(Genshin Impact)의 결정들을 한국 브랜드 입장에서 다시 읽으면 세 가지가 남습니다.
첫째, 진입 문턱과 제품 인상은 반드시 함께 낮아지지 않습니다. 무료 체험, 소용량 트라이얼, 첫 구매 부담을 없앤 구성은 흔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접점에서 브랜드가 싸구려로 보이느냐입니다. 문턱은 낮추되 첫인상은 오히려 올리는 것, 이 조합이 미국에서 새 브랜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강한 출발점입니다.
둘째, 어느 채널에 놓이느냐가 무엇으로 인식되느냐를 결정합니다. 아마존에만 있는 브랜드와 아마존과 자사몰과 오프라인 매대에 동시에 있는 브랜드는 같은 제품이라도 다른 서랍에 들어갑니다. 초기에 채널을 하나로 좁히는 건 효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브랜드의 카테고리를 스스로 규정해 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셋째, 사람들이 이야기할 대상을 만들어 주는 편이 낫습니다. 이 게임이 광고에 캐릭터를 놓은 이유는, 기능은 설명의 대상이지만 캐릭터는 이야기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에도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특정 성분, 창업자의 원칙, 반복되는 시각적 상징, 이름 붙은 제품 하나. 소비자가 자기 언어로 옮겨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커뮤니티가 콘텐츠를 대신 만들어 줍니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세계관을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담 없이 들어오게 하되 싸 보이지 않게, 여러 문을 동시에 열어 두고, 사람들이 옮겨 말할 것을 하나 남기라”는 원칙은 게임이든 화장품이든 식품이든 그대로 옮겨집니다. 0달러로 시작한 게임이 미국에서 오래 남은 건, 공짜여서가 아니라 공짜라는 말의 뜻을 다시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 Game Developer: How Genshin Impact attracts US spenders with cinematic ads
- Baker Institute: China and Globalization: The Gaming Industry
- PocketGamer.biz: An analysis of Genshin Impact’s mobile success
- Game Developer: Marketing Chinese video games to Western play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