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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빨리빨리가 미국에선 독이 될 때

한국식 속도로 밀어붙인 캠페인이 미국에서 왜 조용히 무너지는지,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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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님들과 킥오프 미팅을 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빨리”, “이번 달 안에”, “다음 주까지는 뭔가 보여야”. 저는 그 급함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도감 덕분에 한국 브랜드들이 그동안 그토록 많은 걸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속도가 미국 시장에서는 종종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저는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어느 여름의 일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한 클라이언트가 미국 진출을 결정하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한 달 안에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안 되면 접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예산은 정해져 있었고, 본사 보고는 코앞이었고, 무엇보다 대표님은 한국에서 성공을 이미 여러 번 만들어 본 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한 달로는 미국 소비자가 브랜드 이름을 겨우 두 번 볼까 말까 합니다.”

한국의 시계는 빠르고, 미국의 시계는 다르게 흐릅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좋은 제품에 좋은 캠페인을 붙이면 며칠 만에 반응이 옵니다. 채널이 촘촘하고 소비자들이 빠르게 반응하니까요. 어제 광고를 시작하면 오늘 판매 그래프가 움직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그 스릴을 오래 즐겼습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국토가 넓고, 소비자 취향은 지역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낯선 브랜드에 대한 경계심이 훨씬 깊습니다. 미국 소비자는 처음 보는 브랜드를 만나면 사지 않고 관찰합니다. “이 브랜드가 몇 달 뒤에도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지? 반품 정책은 어떻지?” 이런 질문들을 조용히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 사이에 한국식 시계로 “반응이 없다”고 판단해 캠페인을 접으면, 정확히 소비자가 마음을 열기 직전에 무대를 내리게 되는 셈입니다.

조급함이 만든 어떤 실패의 기록

그 여름의 캠페인은 결국 예정대로 한 달 만에 종료됐습니다. 마지막 주에 재구매 신호가 조금씩 잡히기 시작하던 참이었어요. 저는 데이터를 보면서 “조금만 더 갔으면”이라는 말을 삼켰습니다. 대표님의 결정을 탓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 조급함을 미리 다스리지 못한 제 책임이었으니까요.

그 뒤로 저는 킥오프 자리에서 반드시 하는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미국 시장은 6개월을 하나의 호흡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두 달은 소비자가 브랜드 이름에 익숙해지는 시간, 다음 두 달은 후기와 사회적 증거가 쌓이는 시간, 마지막 두 달에서야 비로소 그동안의 노출이 판매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이 곡선을 모르고 한국식 3개월 안에 승부를 보려 하면,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자마자 파헤쳐 보고 “왜 안 자라?”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속도가 아니라 리듬입니다

그렇다고 미국 시장이 무조건 느긋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입니다. 어디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어디에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감각이요.

예를 들어 크리에이티브 테스트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빨리 돌려야 합니다. 미국은 소비자 세그먼트가 다양해서 어떤 후크가 먹힐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브랜드 신뢰도가 쌓이는 속도는 절대 재촉할 수 없습니다. 후기 하나가 쌓이는 데는 그 사람이 제품을 받고, 써 보고, 마음이 움직이고, 리뷰를 남기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이 통째로 필요하니까요. 그 시간을 돈으로 앞당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걸 “숨을 나눠 쉬는 일”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짧은 호흡으로 처리해야 할 것과 긴 호흡으로 견뎌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 이 둘을 뒤섞으면 짧게 끝낼 일에 시간을 쏟고, 오래 걸어야 할 길에 조바심을 내게 됩니다.

기다림도 실력입니다

한국에서 성공한 대표님일수록 미국에서 이 리듬을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하십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빠른 판단과 빠른 실행이 곧 실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초조함을 다스리는 능력, 데이터가 아직 조용할 때에도 방향을 유지하는 능력, 그것이 실력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저는 요즘 미국 진출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시작하기 전에 6개월치 캘린더를 미리 그려 놓으시라고요. 두 달 뒤에 반응이 미지근해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넉 달 뒤에도 판매가 폭발하지 않아도 접지 않겠다고 미리 정해 두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결심 하나가 있는 브랜드와 없는 브랜드는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빨리빨리는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소중한 자산입니다. 다만 그 자산을 어느 시장에서, 어느 국면에 꺼낼지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라는 시장 앞에서는 잠시 그 시계를 늦추고, 대신 방향을 정확하게 잡는 데 그 에너지를 쓰는 편이 낫습니다. 씨앗을 뿌린 사람이 정말로 해야 할 일은 매일 흙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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