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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보고서 100장보다 고객 스무 명

시장조사 보고서는 평균을 알려주지만 고객 인터뷰는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단어를 알려줍니다. 그 단어를 그대로 카피에 옮겼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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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큰돈을 들여 받은 시장조사 보고서를 처음 펼쳤을 때의 그 기분 말입니다. 표지는 근사하고, 그래프는 색색으로 잘 정리돼 있고, 페이지는 백 장을 훌쩍 넘깁니다. 한 장씩 넘기며 고개도 여러 번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상하게 손에 잡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뭘 바꿔야 하지?” 이 질문 앞에서 갑자기 막막해지는 거죠.

저도 그 막막함을 꽤 오래 겪었습니다. 보고서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확했죠. 다만 정확한 것과 쓸모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보고서는 평균을 말하고, 고객은 사연을 말합니다

보고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30대 후반 여성 소비자의 47%가 가격보다 성분을 우선 고려한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무엇을 알게 됐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47%라는 숫자는 수천 명을 평균 낸 결과입니다. 그런데 평균이라는 건 세상 어디에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카피를 써서 말을 걸어야 할 상대는 평균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 사람인데 말이죠.

제가 실제로 고객 한 분과 통화를 하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성분표를 보긴 하는데요, 사실 뭐가 뭔지 잘 몰라요. 그냥 아기한테 발라도 되나 그거 하나 확인하는 거예요.” 같은 이야기입니다. 성분을 본다는 것. 그런데 이 문장에는 47%에는 없는 것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성분표를 보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 두려움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는지가 다 담겨 있습니다.

숫자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알려줍니다. 인터뷰는 “왜 그런가”와 “그걸 뭐라고 부르는가”를 알려줍니다. 마케팅은 대개 후자에서 만들어집니다.

스무 명쯤 만나면, 같은 단어가 겹치기 시작합니다

스무 명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마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경험상 그쯤 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처음 다섯 명은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열 명쯤 되면 슬슬 비슷한 표현이 들리기 시작하고, 스무 명 언저리에서는 특정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어떤 제품을 두고 사람들이 자꾸 “부담 없다”는 말을 쓴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 카테고리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가장 큰 심리적 장벽이 “부담”이라는 뜻이고, 우리 제품이 그걸 덜어 준다는 뜻입니다. 브랜드는 “프리미엄 포뮬러”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정작 고객은 “부담 없는 거”라고 부르고 있었던 거죠. 이 간극을 아무리 잘 만든 보고서도 잡아 주지 않습니다. 보고서에 들어가는 건 대개 설문 문항을 만든 사람이 미리 골라 놓은 단어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인터뷰 노트를 정리할 때 문장 요약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쓴 단어를 그대로 옮겨 적고, 몇 번 나왔는지 세어 봅니다. 요약하는 순간 제 언어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쓴 단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용기

여기서 대부분 한 번 주춤합니다. 고객이 쓴 말은 대개 세련되지 않거든요. 투박하고, 반복되고, 문법도 안 맞습니다. 그걸 그대로 카피에 넣자고 하면 “이건 좀 없어 보이는데요”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저도 그 마음을 압니다. 우리는 브랜드를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 하니까요.

그런데 소비자가 검색창에 치는 말, 친구에게 추천할 때 쓰는 말, 리뷰에 남기는 말은 전부 그 투박한 언어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쁘게 다듬어도, 그들의 머릿속 사전에 없는 단어는 그냥 지나쳐 갑니다. 카피의 목적은 감탄받는 게 아니라 “어, 저거 내 얘긴데” 하고 멈춰 세우는 것입니다. 멈춰 세우는 힘은 늘 익숙한 단어에서 나옵니다.

물론 들은 걸 전부 그대로 쓰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지키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문장의 리듬은 다듬되, 핵심 명사와 동사는 건드리지 않는 것. “부담 없다”를 “가볍고 산뜻한 사용감”으로 바꾸는 순간, 그 말이 담고 있던 안도감이 통째로 날아가 버립니다.

무엇을 물어야 진짜 언어가 나올까

인터뷰가 늘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 제품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예의 바른 칭찬이 돌아옵니다. 쓸모 있는 대답은 대체로 과거를 물을 때 나옵니다. 이걸 사기 직전에 뭘 하고 계셨는지, 어떤 걸 쓰다가 그만두셨는지, 그때 뭐가 제일 불편했는지 같은 질문들이요.

미래를 물으면 사람들은 상상해서 답하고, 과거를 물으면 기억해서 답합니다. 상상은 예쁘게 포장되지만 기억은 날것 그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날것의 대답에서 항상 카피 한 줄을 건집니다. 스무 번의 대화에서 쓸 만한 문장 서너 개만 건져도 그 조사는 성공입니다.

보고서를 읽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장의 크기나 흐름을 볼 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보고서만 읽고 있으면 우리는 계속 시장에 대해서만 알게 되고, 정작 그 시장 안의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백 장짜리 문서는 우리를 안심시켜 주지만, 스무 번의 대화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결국 무언가를 바꾸게 만듭니다. 저는 그 불편함이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조사 예산을 짤 때, 그중 아주 작은 몫이라도 사람을 직접 만나는 데 떼어 놓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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