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네즈(Laneige)가 미국 시장에서 립 슬리핑 마스크의 향을 ‘베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향기(scent)나 향(fragrance)이라는 뷰티 업계의 관습적 용어 대신, 아이스크림 가게 메뉴판에 오를 법한 단어를 스킨케어 제품에 붙인 것입니다. 이 작은 결정이 립 케어라는 조용한 카테고리를 미국에서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만들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라네즈(Laneige)는 2018년에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 한국 브랜드입니다. 아모레퍼시픽 그룹 소속이고, ‘워터 사이언스’라는 이름의 하이드레이션(수분) 기술을 내세운 프리미엄 매스티지 브랜드입니다. 진출 몇 년 뒤, 시장조사기관 서카나(Circana) 자료 기준으로 라네즈(Laneige)는 미국 립 트리트먼트 부문 판매 1위 브랜드에 2년 연속 올랐고, 2023년에는 대표 립 제품 두 개가 합쳐서 2초에 하나씩 팔린 것으로 브랜드 측이 밝혔습니다.
립을 ‘스킨케어’가 아니라 ‘디저트’로 팔았다
라네즈(Laneige)의 미국 성공을 관통하는 핵심 선택은 하나였습니다. 립 케어를 기능적 스킨케어가 아니라 ‘자기 전 즐기는 감각적 순간’으로 다시 정의한 것입니다. 립 슬리핑 마스크의 향을 베리, 바닐라, 자몽처럼 디저트 메뉴에 나올 법한 이름으로 부르고, 병 색깔도 각각의 과일을 연상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사용자가 이 병을 열 때 떠올리는 이미지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죠.
이 접근은 립 케어라는 카테고리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립 케어는 오랫동안 약국 매대의 실용적인 튜브였습니다. 챕스틱, 카멕스, 버트비. 편리하지만 이야기할 거리가 많지 않은 물건이었죠. 라네즈(Laneige)는 그 자리에 24달러짜리 유리병을 놓았습니다. 가격만 놓고 보면 파격이지만, “잠자기 전 바르는 딸기 케이크”라는 감각 하나로 그 격차를 설명해 냈습니다.
틱톡이 원하던 바로 그 장면
이 감각 중심 전략이 폭발한 무대는 틱톡이었습니다. 짧은 영상에서 가장 강한 건 시각과 촉각의 유혹인데, 라네즈(Laneige) 립 슬리핑 마스크는 그걸 정확히 갖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떠서 입술에 얹을 때의 반투명한 광택, 은은한 향을 확인하는 리뷰어의 표정, 유리병을 여는 짧은 소리. “먹는 게 아니라 바르는 디저트”라는 컨셉은 6초 안에 관심을 사야 하는 플랫폼에 정확히 맞았습니다.
브랜드는 이 흐름을 억지로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인플루언서에게 엄격한 대본을 내미는 대신, 자유롭게 자신의 언어로 제품을 설명하도록 창작의 여지를 열어 두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진짜 감상이 담긴 리뷰가 다시 다른 사용자를 데려왔고, 광고 문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감탄사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세포라(Sephora) 매대에서 완성된 경험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호기심은 오프라인에서 마무리됐습니다. 라네즈(Laneige)의 미국 유통 중심 채널 중 하나는 세포라(Sephora)입니다. 매장에서 소비자는 여러 향을 실제로 시향하고, 발림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틱톡에서 본 그 감각을 매장에서 그대로 확인하는 셈이죠. 감각 마케팅이 화면에서 시작해 손끝에서 완성되는 구조입니다.
가격대도 이 경험에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립 슬리핑 마스크 24달러, 립 글로위 밤 19달러, 글레이즈 크레이즈 틴티드 립 세럼 22달러 안팎. 약국 립밤보다는 훨씬 위, 럭셔리 브랜드보다는 훨씬 아래입니다. “특별한 하루의 마무리”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구간이었습니다.
자사 웹사이트도 같은 톤으로
라네즈(Laneige)는 자사 웹사이트에서도 이 감각 언어를 그대로 이어 갔습니다. 피부 고민을 물어보는 짧은 퀴즈, 고민별로 정리된 제품 큐레이션, “당신을 위해 골라 봤어요” 같은 개인화 섹션. 성분표를 나열하는 대신, 사용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팝업으로 가벼운 할인이나 무료 배송을 제안해 진입 부담을 낮췄고, 후기와 임상 이미지로 신뢰를 더했습니다.
스킨케어 브랜드가 자사 사이트를 카탈로그가 아니라 ‘경험 공간’으로 다룬 것은, 립 슬리핑 마스크가 만들어 놓은 톤을 브랜드 전체로 확장한 결과입니다. 하나의 감각적 선택이 제품 이름과 유통, 인플루언서 콘텐츠, 웹사이트까지 관통한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라네즈(Laneige)의 이야기를 우리 브랜드 입장에서 다시 읽어 보면 몇 가지가 남습니다. 첫째, 카테고리를 다시 정의할 수 있다면 가격의 자유도 함께 얻습니다. 립 케어가 스킨케어가 아니라 ‘자기 전 디저트’가 되는 순간, 24달러라는 가격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습니다. 둘째, 감각 언어(향, 맛, 촉감, 소리)는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 논리적 설명보다 훨씬 강합니다. ‘베리’라는 한 단어가 성분표 열 줄보다 사용자의 기억에 더 깊이 박힙니다. 셋째, 온라인에서 만든 호기심은 결국 오프라인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세포라(Sephora)처럼 향과 발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매대는 감각 마케팅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모든 브랜드가 립밤에 베리 맛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을 어떤 감각으로 기억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스킨케어든 식품이든 가전이든 똑같이 유효합니다. 라네즈(Laneige)의 유리병 하나가 미국 립 트리트먼트 시장 1위를 만든 건, 성분표 때문이 아니라 그 유리병을 열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