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미팅에서 젊은 마케터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메일은 이제 좀 올드하지 않나요? 요즘은 다 인스타랑 틱톡이잖아요.” 저는 그분의 자신감을 굳이 꺾고 싶지 않아서 잠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이메일이 올드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이메일을 다루는 방식이 올드해진 걸까.
지난 십수 년 동안 마케팅 채널의 유행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페이스북이 왕이던 시절이 있었고, 인스타그램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지금은 틱톡과 유튜브 쇼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이메일은 조용히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티도 잘 나지 않게. 그래서 오히려 저평가됐죠.
빌린 집에 아무리 좋은 가구를 들여도
저는 SNS와 이메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SNS는 빌린 집이고, 이메일은 내 집이라고요.
인스타그램에 팔로워 십만 명을 모았다고 해봅시다. 대단한 자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바꾸면, 그 십만 명 중 우리 게시물을 실제로 보는 사람은 갑자기 몇 천 명으로 줄어듭니다. 광고비를 태우지 않으면 내가 어렵게 모은 팔로워에게조차 내 목소리가 잘 가닿지 않는 구조입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는 걸 세입자가 막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죠.
반면 이메일 주소는 다릅니다. 한번 받은 이메일 주소는 플랫폼이 압수해 갈 수 없습니다. 알고리즘이 개입하지도, 노출 비율을 임의로 낮추지도 않습니다. 제가 보내면, 상대의 받은편지함에 도착합니다.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자주 잊습니다.
미국 소비자의 하루에서 이메일이 놓인 자리
제가 미국 시장에서 여러 브랜드와 일하면서 흥미롭게 관찰한 게 있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게 이메일을 확인합니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면서 받은편지함을 훑고, 점심시간에 한 번 더 열어 보고, 저녁에 소파에 앉아 세 번째로 확인합니다. 특히 쇼핑 관련 이메일은 그들에게 하나의 습관에 가깝습니다.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어떤 소식이 왔는지, 어떤 세일이 열렸는지 확인하는 게 일종의 루틴이 된 거죠.
그래서 미국의 잘하는 DTC 브랜드들은 이메일을 절대 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메일을 자기 사업의 심장으로 여깁니다. 매출 리포트를 열어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메일 한 통에서 나온 매출이 인스타그램 한 달 게시물 전체가 만든 매출보다 더 큰 경우가 흔합니다. 그 사실을 아는 브랜드는 이메일 리스트를 자산 명세서에 올려 두고 관리합니다. 팔로워 수보다 이메일 구독자 수를 더 자랑스러워하죠.
이메일이 죽은 게 아니라, 나쁜 이메일이 넘쳐났을 뿐
물론 이메일에 대한 피로감이 생긴 이유도 이해합니다. 우리 모두 하루에 수십 통의 스팸을 받고, 열자마자 닫아 버리는 광고 메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메일은 안 통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결론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통하지 않는 건 이메일 자체가 아니라, 성의 없이 쓴 이메일입니다.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제 산 사람에게 다시 같은 상품을 반값에 사라고 권하는 이메일. 이런 이메일은 죽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이메일이 너무 많아서, 정성껏 쓴 좋은 이메일까지 같이 오해받는다는 겁니다.
제가 봤던 잘 되는 이메일들은 오히려 조용합니다. 신제품 나왔다고 소리치지 않고, 지난주에 새 향을 실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일 하라고 재촉하지 않고, 이번 주말에 어떤 재료로 저녁을 해봤는지 편지처럼 씁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메일은 지우지 않고 끝까지 읽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브랜드의 물건을 삽니다.
내 집을 짓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메일 마케팅이 저평가받는 진짜 이유는, 성과가 하룻밤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광고비를 태우면 그 달의 매출이 튀지만, 이메일 리스트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모아야 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데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립니다. 즉시성이 없어서 답답해 보이죠.
그런데 그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광고를 잠깐 멈춰도 매출이 크게 꺾이지 않는 브랜드가 됩니다. 새 제품을 낼 때 이미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브랜드가 됩니다. 플랫폼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가 됩니다. 그게 내 집을 가진 사람의 여유입니다.
혹시 지금 SNS 팔로워 수는 관리하시면서 이메일 리스트는 몇 명인지도 잘 모르고 계신다면, 오늘 한 번쯤 자문해 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지금 빌린 집을 아름답게 꾸미느라 시간을 다 쓰고 있지는 않은가. 언젠가 이사를 강제로 나가야 할 때, 나에게 남는 게 무엇인가. 이메일은 죽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조용한 힘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