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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마케터의 책상 위에 대시보드가 놓이던 날

후배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이야기. 직감으로 던지던 시대가 저물고, 마케팅이 엔지니어의 일을 닮아가는 풍경에 대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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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후배 마케터가 커피잔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선배, 요즘 일하면서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분명히 마케팅을 한다고 들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하는 일이 카피를 쓰고 캠페인을 기획하는 시간보다, 데이터 시트를 들여다보고 자동화 흐름을 점검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더라고요. 이게 마케팅이 맞나 싶은 날도 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그건 후배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자기가 몸담은 일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신호였거든요. 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 마케팅이 점점 엔지니어의 일을 닮아가고 있다는 뜻이야.” 후배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화이트보드 앞에서 마커를 외치던 시대

예전의 마케팅을 떠올려 보면, 회의실 한복판에 큰 화이트보드가 놓여 있고 그 앞에서 누군가 마커를 들고 카피 한 줄을 외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거다 싶은데?” 그 한마디면 다음 분기 캠페인의 방향이 정해지기도 했죠. 직감과 크리에이티브가 마케팅의 심장이었고, 그 심장이 뜨거우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모두가 믿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해 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 풍경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바뀌어 왔습니다. 이제 회의실 화이트보드 자리에는 대시보드가 떠 있습니다. 어떤 광고가 몇 초 만에 스킵되었는지, 어느 페이지에서 사람들이 머뭇거리다 떠났는지가 실시간으로 흐르고, 우리는 그 신호 위에서 다음 한 수를 둡니다. 마커를 들고 외치던 자리에, 가설을 세우고 작은 실험을 거는 시간이 슬그머니 들어섰습니다.

데이터는 성적표가 아니라 재료입니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데이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어디에 썼나 하면, 캠페인이 끝난 뒤에 “이번엔 이래서 잘됐고, 저래서 아쉬웠습니다”라고 회고하는 자리에서 주로 등장했습니다. 일종의 성적표였죠. 다 끝난 시험지를 펴 놓고 빨간 펜으로 줄을 긋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데이터는 더 이상 끝난 뒤에 들춰 보는 성적표가 아니라, 일하는 동안 곁에 두고 계속 만지는 재료에 가깝습니다. 고객이 어떤 영상에서 손가락을 멈췄는지, 검색창에 어떤 단어를 적다가 지웠는지, 카트에 담아 두고 잠시 나갔다가 며칠 뒤에야 결제를 했는지. 이 모든 흔적이 사실은 고객이 우리에게 보내는 작은 신호입니다.

좋은 마케터는 이 신호를 그저 숫자로만 보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 합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마음에 맞춰 다음 메시지를 골라 보냅니다. 이건 더 이상 회고가 아니라, 거의 운영에 가까운 일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맞춰 다음 한 발을 옮기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한 편의 작품에서 잘 정돈된 블록으로

또 하나 크게 달라진 것이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캠페인 하나가 결정되면 그에 맞춰 영상도, 배너도, 카피도 처음부터 새로 만들었습니다. 한 편의 작품을 빚어내듯이요. 그래서 한 캠페인을 준비하는 데에도 몇 달이 들었고, 그만큼 마음의 무게도 컸습니다.

지금은 좀 다릅니다. 짧은 영상 클립, 후킹용 카피 한 줄, 배너 템플릿, 후기 한 조각 같은 것들을 잘 만든 부품처럼 쌓아 두고, 채널과 상황에 맞게 조립해서 내보내는 흐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가끔 이걸 레고에 비유하곤 합니다. 작품 하나를 매번 처음부터 깎아내는 조각가가 아니라, 잘 정돈된 블록을 가지고 그때그때 필요한 모양을 빠르게 조립하는 빌더에 가까워졌다고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일하는 호흡 자체가 짧아집니다. 일 년에 한 번 큰 캠페인에 모든 걸 거는 대신, 카피 두 줄을 작게 실험해 보고, 어떤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흔드는지 확인한 뒤에 다음 한 걸음을 정하는 식이죠. 실행하고, 결과를 보고, 다시 실행한다. 개발자들이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해 온 그 리듬이, 어느새 마케팅의 기본 박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

이렇게 말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럼 결국 마케터는 데이터만 잘 보면 되는 건가요?” 저는 그 질문 앞에서 늘 잠시 멈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답은 정반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도구가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가장 사람다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더 귀해집니다.

대시보드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려 주지만, 왜 일어났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어떤 광고의 클릭률이 갑자기 올랐다는 사실은 보여 주어도, 그 광고 속 한 줄이 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었는지는 결국 사람이 해석해야 합니다. 가설을 세우는 일, 그 가설 뒤에 어떤 사람을 떠올리는 일, 숫자 너머에 있는 한 사람의 하루를 상상하는 일. 이건 어떤 자동화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에게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엔지니어처럼 일한다고 해서, 우리가 엔지니어가 되는 건 아니야.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사람이고, 다만 그 마음을 더 정확히 읽기 위해 새로운 도구를 익혀 가는 중인 거지.” 후배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살짝 웃었습니다. 어쩌면 그날 우리 둘 다, 마케터라는 일의 이름이 조금 바뀌고 있을 뿐 본질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구는 계속 바뀔 겁니다. 어제의 대시보드가 내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겠죠.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하나입니다. 결국 우리는 한 사람의 마음에 닿으려고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그 한 가지를 잊지 않는 마케터라면, 도구가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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