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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가격을 올리면서 사과하지 마세요

가격 인상 공지가 사과문처럼 읽히는 순간, 소비자는 우리가 스스로 인상을 잘못이라고 인정했다고 받아들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같은 인상도 다르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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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을 올릴 때는 최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알려야 한다. 다들 이걸 당연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그 정중함이 대부분의 경우 브랜드를 지켜 주기는커녕 스스로 발등을 찍는다고요. 소비자는 우리가 미안해하는 만큼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하는 만큼 “아, 이건 원래 하면 안 되는 일이었구나”를 학습합니다.

사과문처럼 읽히는 가격 인상 공지

가격 인상 안내문을 몇 개만 나란히 놓고 읽어 보면 문장 구조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부득이하게, 불가피하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최선을 다해 버텨 왔으나,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단어들이 순서만 바뀐 채 반복됩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 틀 안에서 문장을 다듬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예의 바르게, 더 미안하게 들리게 쓸까 고민했죠.

그런데 어느 날 그 공지를 소비자 입장에서 소리 내어 읽어 봤습니다. 이상하더군요. 문장 전체가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자백과 변명이 반씩 섞인 글이었어요. 여기에는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하게 됐는지, 이 가격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우리 사정만 있었습니다.

소비자가 그 글에서 읽어 내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이 브랜드는 지금 자기가 받는 돈이 과하다고 생각하는구나. 파는 사람이 스스로 비싸다고 여기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 흔쾌히 제값 주고 살 이유는 없습니다.

순서를 바꾸면 같은 인상이 다르게 읽힙니다

제가 여러 브랜드의 가격 조정을 지켜보면서 정리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인상이 매끄럽게 넘어간 경우와 반발이 컸던 경우를 갈랐던 건 인상 폭이 아니라 순서였습니다.

반발이 컸던 쪽은 대개 이 순서였습니다. 비용이 올랐다, 그래서 가격을 올린다, 죄송하다. 여기서 소비자가 받는 건 오직 부담뿐입니다. 얻는 건 하나도 없이 내야 할 돈만 늘어난 거죠. 반면 매끄러웠던 쪽은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무언가 먼저 좋아졌습니다. 용량이 늘었거나, 포장이 바뀌었거나, 배송이 빨라졌거나, 없던 사후 관리가 생겼거나요. 그 변화를 소비자가 몸으로 먼저 느낀 다음에 가격 조정 소식이 왔습니다.

같은 5퍼센트도 이 두 순서에서는 전혀 다른 숫자가 됩니다. 앞의 5퍼센트는 빼앗기는 5퍼센트고, 뒤의 5퍼센트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해 치르는 5퍼센트입니다. 사람은 손해와 대가를 완전히 다르게 계산합니다. 지갑에서 나가는 돈은 똑같은데도요.

먼저 올려야 하는 건 가격이 아니라 가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격 인상 논의가 나오면 문구부터 손대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올린 가격을 받을 자격이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끼리라도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어떤 문장으로 포장해도 그 어색함은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자신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듯이요.

가치를 올린다는 게 꼭 원가를 더 쓴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브랜드에게는 응대 속도일 수 있고, 어떤 브랜드에게는 재구매 고객을 알아봐 주는 작은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소비자가 “아, 뭔가 달라졌네”라고 느낄 만한 지점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지점이 있어야 인상 소식이 왔을 때 소비자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럴 만하네, 하고요.

순서를 지키기 어려운 이유도 압니다. 비용은 이미 올랐고 자금은 급한데, 가치를 먼저 개선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순서를 뒤집으면 그 급했던 몇 달을 아끼는 대신 몇 년 치 신뢰를 씁니다. 저는 이 교환이 거의 언제나 손해였다고 봅니다.

당당한 문장이 오히려 더 정중합니다

당당하게 알리라고 하면 뻣뻣하게 통보하라는 뜻으로 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건 그 반대입니다. 진짜 무례한 건 변명으로 가득한 글입니다. 그런 글은 결국 우리 얘기만 하고 있으니까요. 원자재가 어떻고 환율이 어떻고 하는 사정은 솔직히 소비자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당당한 공지는 오히려 소비자 중심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 가격에는 무엇이 포함되는지, 언제부터 적용되는지, 기존 고객에게는 어떤 배려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씁니다. 여기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맙고, 앞으로 이런 것을 더 하겠다고요. 사과와 감사는 겨우 한 문장 차이인데, 읽는 사람이 앉게 되는 자리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과문에서 소비자는 피해자 자리에 앉고, 감사문에서는 동행자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예고해야 합니다. 인상 시점을 미리 알리는 건 지금 가격으로 마지막 한 번 살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바뀐 가격을 결제 화면에서 처음 마주하게 만드는 것, 그게 진짜 무례입니다.

가격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문장입니다

결국 가격표는 숫자 이전에 태도입니다. 우리가 우리 물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그 숫자와 그 숫자를 설명하는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스스로 값을 낮춰 보는 브랜드의 물건은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에게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건 그냥 뻔뻔해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당당함은 근거에서 나오고, 근거는 실제로 더 나아진 무언가에서 나옵니다. 그 근거를 만드는 일이 먼저고, 알리는 일은 그다음입니다. 순서만 지켜도 인상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 됩니다.

가격을 올리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부담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 들여다볼 만합니다. 소비자가 화낼까 봐 두려운 걸까요, 아니면 아직 그 값을 받을 준비가 안 됐다는 걸 우리가 먼저 알고 있는 걸까요. 대개는 후자입니다. 그리고 그건 문장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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