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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AI가 마케터를 대체할까, 라는 질문 앞에서

예일대의 33개월 추적 데이터가 보여 준 의외의 결론, 그리고 그 안에서 마케터가 진짜로 붙들어야 할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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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팅을 하다 보면, 카피나 캠페인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마지막에 꼭 한 번씩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희 마케팅 팀 일자리는 괜찮은 거 맞나요?” 농담처럼 던지는 분도 계시고, 정말 진지한 얼굴로 물어보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톤이든 그 질문 뒤에는 같은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불안함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카피 한 줄 쓰는 데 며칠 고민하던 일이 이제는 채팅창에 한 줄 입력하면 수십 가지 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니까요. 저 역시 처음에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한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 보면서, 그 서늘함의 정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3개월이 지난 뒤에야 보이는 풍경

예일대학교의 한 연구팀이 흥미로운 작업을 했습니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세상에 등장한 시점부터 33개월 동안, 미국 노동시장의 고용 데이터를 차분하게 들여다본 겁니다. 결론은 의외로 잔잔했습니다. AI 때문에 일자리가 우르르 사라지는 현상은, 적어도 데이터 위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위협받을 거라 떠들썩하게 거론되던 마케팅, 디자인, 콘텐츠 같은 직군에서도 뚜렷한 감소세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업 간 사람들이 옮겨 다니는 비율, 그러니까 어떤 직무에서 다른 직무로 흘러가는 속도조차 인터넷이 처음 보급되던 시기보다 1퍼센트 정도 빨라진 수준이었습니다. 거대한 지각변동이라기보다는, 강물이 흐르는 속도가 아주 조금 빨라진 정도였던 거죠.

이 숫자를 보고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매일 SNS와 뉴스에서 듣는 ‘대체된다’는 말이 실제 노동시장에서는 그렇게까지 단순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것만은 짚어 두고 싶었습니다.

‘노출됐다’와 ‘실제로 쓴다’는 다른 말

이 보고서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많은 기사들이 “이 직업은 AI에 노출도가 높다”고 단정 짓는데, 이 연구진은 ‘노출도’와 ‘실제 활용도’를 따로 떼어 놓고 봤습니다.

한쪽은 이론상 AI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따지는 점수이고, 다른 한쪽은 사람들이 실제로 일터에서 AI를 얼마나 자주 꺼내 쓰는가를 본 데이터입니다. 둘을 겹쳐 보니 풍경이 달랐습니다. AI는 주로 컴퓨터 공학이나 수학 관련 영역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었고, 정작 노출도가 높다던 마케팅 같은 분야에서는 실제 사용률이 생각보다 낮았습니다.

이 차이가 저는 묘하게 와닿았습니다. “할 수 있다”와 “정말 그렇게 하고 있다” 사이에는 늘 큰 강이 흐르더군요. 마케팅이라는 일이 단순히 글자를 뽑아내고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업만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를 위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감정을 건드리며 만들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무수한 판단들이 그 안에 얹혀 있으니까요. 그 판단을 통째로 기계에 맡기는 회사는,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업률이라는 가장 정직한 거울

만약 AI가 정말로 사람들의 일을 빠르게 빼앗고 있다면, 가장 먼저 출렁여야 할 지표가 실업률입니다. 그런데 같은 33개월 동안 AI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된 직군의 실업률 곡선도 별다른 이상 신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함께 제시됐습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기보다, 옆자리에서 일을 거드는 보조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침입자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같은 존재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죠. 적어도 지금까지의 데이터는 그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일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모습을 바꾼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오래된 장면을 떠올립니다. 컴퓨터가 사무실에 처음 들어오던 시절, 수많은 사무직이 곧 사라질 거라는 예측이 쏟아졌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어떤 일은 사라졌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새로운 직무가 그 자리에 생겨났습니다. 기술이 한 일은 일자리를 없앤 게 아니라, 일의 모양을 바꿔 놓은 것에 가까웠습니다.

AI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단순 작업, 예를 들어 검수표를 채우거나 비슷한 카피를 변주하는 일은 점점 자동화될 겁니다. 그러나 어떤 브랜드가 무엇을 약속하고 싶은지를 정의하는 일, 소비자의 망설임을 한 줄 카피로 풀어내는 일,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보고서는 한 가지 작은 단서를 덧붙였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들어온 초보 경력자에게는 약간의 영향이 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입문 업무가 줄어들면, 자연히 신입이 경험을 쌓을 자리도 좁아지니까요. 이건 우리 업계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 대신 들여다보기

저는 이 연구를 읽고 난 뒤, 마케터로 일하는 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AI가 무서운 게 아니라, AI를 막연하게만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무섭다고요. 막연한 공포는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지만, 데이터 위에 발을 디딘 두려움은 다음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마케터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실험입니다. 내 일과 중에 어떤 부분을 AI에게 맡겨 보면 좋은지, 어떤 부분은 끝까지 내 손으로 다듬어야 하는지를 직접 부딪쳐 보는 일이죠. 회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에 놀라 황급히 인력을 줄이기보다, 한 워크플로우씩 차분히 AI를 끼워 넣어 보면서 무엇이 더 잘 굴러가는지 확인하는 편이 훨씬 건강합니다.

그리고 끝내 사람의 자리로 남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략을 세우는 일, 브랜드의 인상을 짓는 일, 데이터 뒤에 숨은 한 사람의 망설임을 해석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실력을 한 뼘씩 키워 나가는 사람에게, AI는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곁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됩니다.

“AI가 내 일을 대체할까”라는 질문을, 저는 요즘 이렇게 바꿔 봅니다. “AI와 함께 일하는 나는, 작년의 나보다 어떤 점에서 더 나아졌는가.” 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지만,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한 우리는 아직 충분히 마케터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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