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뷰티 에디터가 클렌징 오일을 처음 만난 자리는 광고가 아니라 백화점 매장이었습니다.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의 스킨케어 코너, 낯선 이름이 적힌 작은 병 앞에서 직원이 사용법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 특이했다고 합니다. 성분 함량을 먼저 말하지 않고, 손바닥에 오일을 덜어 얼굴을 천천히 감싸는 순서부터 알려 줬다는 것입니다. 제품을 산 게 아니라 절차를 하나 배워 온 기분. 타차(Tatcha)가 미국 시장에서 만들어 온 첫인상이 대체로 그랬습니다.
일본에서 영감을 얻고, 미국에서 태어난 브랜드
타차(Tatcha)는 일본 브랜드가 아닙니다.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미국 회사이고, 창업자 비키 차이(Vicky Tsai)가 일본 게이샤의 미용 관습에서 착안해 만든 럭셔리 뷰티 브랜드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이 브랜드의 창업과 초기 성장을 별도의 사례 연구로 다룰 만큼, ‘일본적인 콘셉트를 미국식 럭셔리 사업으로 옮겨 놓은’ 구조 자체가 관찰 대상이었습니다.
이 지점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브랜드가 파는 것은 일본산 원료 목록이 아니라, 일본에서 오래 이어져 온 ‘돌보는 방식’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초기에는 기름종이와 클렌징 제품이 대표 품목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씻고, 관리하고, 보습하는 하나의 루틴 체계로 확장됐습니다. 지금 자주 언급되는 주력 제품군을 보면 이 구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듀이 스킨 크림(Dewy Skin Cream), 더 라이스 워시(The Rice Wash), 카멜리아 클렌징 오일(Camellia Cleansing Oil), 인디고 크림(Indigo Cream). 각각이 세안, 정화, 진정, 보습이라는 자리를 하나씩 맡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언어도 특이합니다. 결점을 고쳐 주겠다는 말 대신, 잠시 속도를 늦춰도 된다는 허락에 가까운 메시지를 씁니다. 업계에서 타차(Tatcha)를 ‘감정적 스킨케어(emotional skincare)’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성분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성분 대신 시간과 태도를 파는 선택이었습니다.
채널 1. 세포라 한 곳에만 집중한 시기
타차(Tatcha)의 미국 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정은 유통을 좁힌 것입니다. 온라인과 바니스 뉴욕으로 출발한 뒤, 미국에서는 세포라(Sephora) 단독 유통 체제를 오래 유지했습니다. 얼타도, 백화점도, 월마트도, 아마존도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매출을 키울 수 있는 문을 여러 개 닫아 둔 셈입니다.
대신 얻은 것이 있습니다. 세포라는 교육받은 매장 직원이 있고, 뷰티 인사이더(Beauty Insider)라는 강력한 멤버십 프로그램이 있고, 샘플링과 진열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곳입니다. 설명이 필요한 브랜드에게는 이 조건이 결정적입니다. 클렌징 오일을 손에 덜어 얼굴을 감싸는 순서를 누군가 옆에서 알려 줘야 하는 제품이라면, 아무 데서나 팔리는 것보다 제대로 설명되는 한 곳에서 팔리는 편이 낫습니다.
글로시(Glossy)의 보도에 따르면 이 시기 타차(Tatcha)는 미국에서 주로 세포라와 자사몰 Tatcha.com, 그리고 바니스 뉴욕을 통해 판매됐고, 해외로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메카(Mecca), 일본의 조이스(Joyce) 정도로 제한적이었습니다. 넓히지 않는 것이 전략이었습니다.
채널 2. 자사몰, 럭셔리를 온라인에서 파는 실험
동시에 타차(Tatcha)는 초기부터 직접 판매(DTC) 모델을 갖고 있었습니다. 에모리 대학의 사례 연구는 이 브랜드가 전자상거래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온라인 DTC로 출발했다는 점을 짚습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고가 스킨케어를 매장 체험 없이 온라인에서 판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꽤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데이터 때문입니다. 자사몰이 살아 있으면 누가 무엇을 언제 다시 사는지가 브랜드 손에 남습니다. 실제로 타차(Tatcha)는 이메일과 CRM을 성실하게 운영한 브랜드로 언급됩니다. 리테일 파트너가 늘어나도 자사몰을 접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고객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통로 하나는 끝까지 쥐고 있었던 셈입니다.
채널 3. 인플루언서를 아껴 쓴 브랜드
소셜 채널 운영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글로시(Glossy)는 2018년 10월 타차(Tatcha)가 크리에이터 클레어 마셜(Claire Marshall)과 함께 무보수 인플루언서 캠페인을 시험적으로 진행했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기사는 세포라와 자사몰 중심으로 이미 잘 팔리고 있던 이 브랜드가 유료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돈을 아끼려는 인색함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로 읽힙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킨케어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추천하는 흐름이 먼저 있었고, 유료 캠페인은 그 흐름을 확인한 뒤에 붙는 도구였습니다. 이후 브랜드는 앰배서더 패널을 정비하고 소셜과 퍼포먼스 마케팅을 브랜드 전략 안으로 통합했지만, 출발점은 자발적 추천이었습니다.
패키지 하나에도 같은 태도가 보입니다. 일본의 선물 문화에서 착안한 홀리데이 기프트 세트 패키징은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과 함께 설계됐습니다. 신규 고객을 끌어오는 광고가 아니라, 이미 있는 고객이 누군가에게 브랜드를 건네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채널 4. 문을 열기 시작한 시점
좁게 유지하던 유통은 결국 넓어집니다. 2024년 12월 보도를 통해 얼타 뷰티(Ulta Beauty) 입점이 알려졌고, 패션유나이티드에 따르면 2025년 1월 1일부터 타차(Tatcha)의 스킨케어는 미국 내 1,400개 이상의 얼타 매장과 온라인에서 프레스티지 라인업의 일부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세포라 독점 시기가 끝난 것입니다.
클라비요(Klaviyo)의 고객 사례에는 “현재 타차(Tatcha)는 세포라, 얼타, 아마존 같은 주요 리테일 파트너를 통해 판매하며 자사몰에서도 직접 판매한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아마존이 언제 어떤 규모로 들어갔는지는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은 채널 목록에 포함돼 있습니다.
순서를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좁은 곳에서 브랜드를 정확하게 각인시키고, 그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다음에 문을 열었습니다. 반대 순서였다면 1,400개 매장은 기회가 아니라 희석이었을 것입니다.
채널 5. 브랜드 자체를 다시 세운 작업
확장과 함께 브랜드도 한 번 다시 짜였습니다. 프론트 로우(Front Row)의 사례 연구는 타차(Tatcha)의 ‘전면적인 브랜드 재구축’을 다루며, 감정 중심의 브랜드 설계와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나로 정렬하고 젊은 세대까지 닿도록 브랜드 DNA를 현대화했다고 설명합니다. 듀이 밀크(Dewy Milk) 론칭은 감정을 앞세운 멀티채널 캠페인으로 진행됐고, 이 브랜드는 WWD가 집계한 바이럴 브랜드 순위에서 상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흐름은 2019년에 한 번 결산됩니다. 유니레버가 타차(Tatcha)를 인수했고, 인수 금액은 5억 달러 수준으로 보도됐습니다. 게이샤의 미용 관습에서 출발한 콘셉트가 글로벌 소비재 기업의 포트폴리오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타차(Tatcha)의 경로를 한국 브랜드 입장에서 다시 읽으면 세 가지가 남습니다.
첫째, 유통을 넓히는 것이 항상 성장은 아닙니다. 설명이 필요한 제품일수록, 설명해 줄 수 있는 채널 한 곳에 먼저 자리를 잡는 편이 빠릅니다. 세포라든 얼타든 아마존이든, “어디에 넣을까”보다 “어디서 제대로 설명될까”를 먼저 묻는 것이 순서입니다.
둘째, 원산지가 아니라 방식을 팔 수 있습니다. 타차(Tatcha)는 일본 회사가 아니면서도 일본의 미의식을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한국 브랜드에게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이어져 온 관리 습관과 순서가 있고, 그것을 미국 소비자가 따라 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성분표를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방식으로 묶어 보여 주는 쪽이 기억에 남습니다.
셋째, 리테일에 들어가도 자사몰은 놓지 않아야 합니다. 리테일은 매출을 주지만 고객 데이터는 주지 않습니다. 재구매 주기와 선호 제품을 아는 브랜드만이 다음 제품을 제대로 낼 수 있습니다.
확장은 준비된 브랜드에게만 기회입니다. 정의가 먼저였고, 매장 수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 FashionUnited: Tatcha targets US growth and expands into Ulta Beauty
- Front Row: The Tatcha Playbook: Emotional Skincare, Elevated
- Harvard Business School: TATCHA: Marketing the Beauty Secrets of Japanese Geish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