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트렌드를 좇다 브랜드를 잃습니다

남이 성공한 콘텐츠 포맷을 그대로 따라 해도 우리 브랜드까지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트렌드에 올라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𝕏
in
🔗

몇 달 전, 인스타그램을 무심히 넘기다가 어딘가 익숙한 릴스를 만났습니다. 한국의 어느 화장품 브랜드 사무실을 배경으로, 직원들이 신제품 립스틱을 발라 보고 서로 웃으며 리액션을 주고받는 15초짜리 영상이었습니다. “아, 그 브랜드 릴스구나” 하고 스크롤을 넘겼는데, 몇 번 더 내리자 또 비슷한 게 나왔습니다. 다른 회사인데 배경도 사무실, 직원들이 화장품을 나눠 발라 보는 구성도, 편집 리듬도 어딘가 비슷했습니다. 그날 저녁까지 저는 같은 얼개의 릴스를 서너 개는 더 봤던 것 같습니다.

한 브랜드가 터뜨린 오피스 릴스

시작은 한 브랜드였습니다. 이름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업계에 오래 계신 분들이라면 어느 브랜드인지 짐작하실 겁니다. 이 브랜드는 직원들이 실제 사무실에서 신제품을 꺼내 자기들끼리 발라 보고, 웃고, 서로 놀리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짧은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조명도 화려하지 않고, 대사도 대본 같지 않았고, 편집도 요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게 터졌습니다. 조회수가 수십만, 수백만 단위로 오르고,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저 브랜드 직원들 왜 이렇게 귀엽냐”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성공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브랜드는 원래부터 “브랜드가 곧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오프라인 팝업에서 직원들이 손님과 편하게 수다를 떨고, 온라인에서도 딱딱한 광고보다 사람 냄새 나는 콘텐츠를 꾸준히 올려 왔던 브랜드였죠. 그러니 오피스 릴스가 갑자기 튀어나온 이벤트가 아니라, 원래 그 브랜드가 보여 주던 얼굴의 다른 각도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팬들에게는 낯선 포맷이 아니라, 늘 알던 목소리의 다른 톤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시작된 복붙 러시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 릴스가 터지자, 다른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비슷한 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배경,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화장, 웃음소리와 리액션. 어떤 곳은 카메라 각도까지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마케팅 미팅에서 “요즘 이게 뜨니까 우리도 이런 걸로 갑시다”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나왔을지, 상상이 갑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부분은 조용히 묻혔습니다. 저도 그 무렵 클라이언트 회의에서 비슷한 제안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희도 사무실 릴스 한번 찍어 볼까요? 요즘 저게 뜨잖아요.” 저는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브랜드는 원래 소비자에게 어떤 얼굴로 알려져 있었죠?” 대답이 잘 안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브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릴스를 올리면, 팬들은 반가워하기보다 어리둥절해합니다. 새로운 매력을 얻는 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매력이 흐려지는 쪽에 가깝죠.

포맷은 그릇, 정체성은 요리

여기서 저는 마케터로서 늘 되새기는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어떤 콘텐츠가 성공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포맷”부터 흉내 냅니다. 오피스 배경, 자연스러운 편집, 웃음소리 같은 겉모습을 뜯어서 우리 것에 붙이려 하죠. 그런데 원조가 성공한 진짜 이유는 그 포맷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원래 갖고 있던 정체성이 그 포맷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포맷은 그릇이고, 정체성은 그 안에 담기는 요리입니다. 남의 그릇을 그대로 가져와 봤자 우리 요리가 그 안에서 어색해 보이면 소비자는 금방 알아챕니다. 오히려 “저기도 요즘 유행 따라가는구나” 하는 인상만 남기죠. 브랜드가 유행을 따라가는 모습이 잦아질수록, 소비자 머릿속에서 그 브랜드의 고유한 색깔은 조금씩 흐려집니다. 트렌드에 편승해 잠깐의 이목을 끄는 사이, 정작 오래 남아야 할 브랜드의 얼굴이 지워지는 겁니다.

모든 파도에 올라탈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클라이언트에게 종종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트렌드는 파도 같은 거라서 전부 올라탈 필요가 없다고요. 저 파도가 왜 컸는지, 우리 서핑보드가 저 파도에 맞는 모양인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어떤 트렌드는 우리 브랜드의 원래 얼굴과 잘 맞고, 어떤 트렌드는 아무리 커도 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는 물결입니다. 후자를 억지로 타면 넘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잘 지켜 온 자세까지 흐트러집니다.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요즘 뭐가 뜨나요?”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는 그동안 어떤 이야기를 해 왔나요?”입니다. 그 이야기 위에 지금 유행하는 형식이 자연스럽게 얹힐 수 있다면, 그때는 트렌드를 활용해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지나가는 파도로 두는 편이 낫습니다.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기 전에

돌아보면, 제가 오랫동안 좋아한 브랜드들은 대부분 유행에 조금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뒤늦게 하는 대신, 자기가 잘하는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계속 반복해서 들려주는 브랜드였죠. 유행하는 릴스는 며칠 뒤면 잊히지만, 그런 브랜드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트렌드를 좇다 보면 잠깐의 조회수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 브랜드가 원래 어떤 목소리를 갖고 있었는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결정하기 전에, 저는 늘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건 남이 성공한 방식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원래 잘하던 방식인가요?” 이 질문 하나만 습관이 되어도, 브랜드가 유행에 휩쓸려 자기 색을 지우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남의 파도를 잘 탄 브랜드가 아니라, 자기 파도를 계속 만들어 온 브랜드니까요.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Calywire · 무료 상담

미국 진출,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브랜드 카테고리와 현재 미국 시장에서 풀고 싶은 과제 두세 가지만 알려주시면 충분합니다. 48시간 안에 한국어로 회신드립니다.

48h
48시간 회신 약속
미국 본사·서울 지사 담당자가 직접 검토 후 회신합니다.
무료 상담 신청
제출 시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동의하며, 캘리와이어의 안내·마케팅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수신 거부는 언제든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