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세포라(Sephora) 매장의 한쪽 매대에는 분홍 리본을 단 작은 캐릭터가 종종 등장합니다. 립글로스, 미니 향수, 블러셔가 빼곡한 진열대 한복판에 헬로키티(Hello Kitty) 한정 컬렉션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캐릭터가 미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뷰티 채널 가운데 하나인 세포라(Sephora)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같은 캐릭터는 미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타깃(Target)의 학용품 코너, 메이저리그 야구장의 한정판 굿즈 부스, 밴스(Vans)의 운동화 진열장, 백화점 잡화 코너까지. 1976년 미국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산리오(Sanrio)는 어린이용 연필꽂이와 작은 지갑을 파는 일본 브랜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미국 매대에 이런 풍경이 가능해졌을까요.
미국에서 일본 캐릭터가 부딪힌 벽
미국 시장은 자기 캐릭터에 익숙한 곳입니다. 디즈니(Disney)의 미키마우스, 워너의 루니툰스, 마블의 슈퍼히어로처럼 미국인들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IP가 매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일본의 작은 고양이 캐릭터가 들어가려면, 귀여운 디자인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산리오(Sanrio)는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 일본에서 통했던 자체 직영점 ‘산리오 기프트 게이트(Sanrio Gift Gate)’ 모델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어린이용 문구와 작은 지갑이 중심이었죠. 하지만 미국은 직영점 몇 곳으로 닿기에는 너무 넓고, 너무 분산된 시장이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산리오(Sanrio)의 북미 법인은 한동안 6년 연속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직영점을 줄이고, 라이선싱으로 펼치다
돌파구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 직접 판다’는 발상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산리오(Sanrio)의 임원 하토야마 레이는 한 인터뷰에서, 2000년대부터 미국 시장에 맞춘 별도의 상품 기획을 본격화했고 자체 매장 네트워크 외에 다양한 유통 채널을 함께 열어 갔다고 설명합니다. 일반 잡화점, 백화점, 드러그스토어, 토이저러스(Toys “R” Us) 같은 대형 유통이 그 무대였습니다.
2007년 자료를 보면, 헬로키티(Hello Kitty)는 미국 전역 약 4,000개 매장에서 팔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산리오(Sanrio) 직영 매장은 200곳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라이선싱과 유통 파트너의 손을 빌린 결과였습니다. 캐릭터를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구조 덕분에, 산리오(Sanrio)는 공장 없이도 미국 곳곳에 헬로키티(Hello Kitty)를 깔 수 있었습니다.
이 라이선싱은 점점 영리해졌습니다. 산리오(Sanrio)는 미네통카(Minnetonka), 메이저리그 야구(MLB), 밴스(Vans), 세포라(Sephora) 같은 미국적인 파트너와 손을 잡았습니다. 작은 지갑과 학용품에 머물 수 있었던 캐릭터가, 모카신과 운동화로, 야구 모자와 응원 굿즈로, 한정판 메이크업 컬렉션으로 옮겨 갔습니다. 전 세계 라이선시가 1,700곳을 넘고 매년 5만 종 이상의 상품이 만들어지는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됐습니다.
적자의 시간을 끝낸 디지털 콘텐츠
라이선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가 매대에 깔려 있어도, 새로운 세대가 그 캐릭터를 자기 일상에 들이지 않으면 매출은 천천히 식습니다. 6년 연속 적자가 이 사실을 가르쳐 줬습니다.
이 흐름을 되돌린 것이 디지털 콘텐츠 전략이었습니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산리오(Sanrio)는 일종의 풀뿌리 접근을 택했습니다. 거창한 광고 캠페인 대신, 유튜브(YouTube)와 소셜 미디어에 짧고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헬로키티(Hello Kitty)에게 가족과 친구가 있고, 각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설정을 짧은 영상으로 다시 풀어냈죠. 셀럽과 인플루언서가 가세한 콜라보, 헬로키티(Hello Kitty) 카페와 팝업 행사도 소셜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설계됐습니다.
35세에 취임한 츠지 토모쿠니(Tomokuni Tsuji) CEO 체제에서 산리오(Sanrio)는 디지털 존재감과 고마진 라이선싱 사업을 빠르게 키웠고, 알려진 바로는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북미 법인 역시 오랜 적자 행진을 끝내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라이선시를 오히려 줄이는 역설
2025년 분석에 따르면 산리오(Sanrio)는 북미 라이선시를 230곳 이상에서 약 190곳으로 오히려 줄였습니다. 더 많이 팔기 위해 더 적게 만든 셈입니다. 상위 20%의 핵심 라이선시에 집중하면서, 품질이 떨어지거나 브랜드 톤과 맞지 않는 상품을 매대에서 걷어 내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 결정은 캐릭터 브랜드에서 의외로 중요합니다. 라이선싱은 풀어 놓으면 풀어 놓을수록 단기 매출은 늘지만, 캐릭터의 인상은 평범해집니다. 산리오(Sanrio)는 헬로키티(Hello Kitty)를 ‘아무 데서나 살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제대로 만든 자리에서 만나는 캐릭터’로 다시 잡아 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헬로키티(Hello Kitty)의 미국 50년을 우리 브랜드 입장에서 다시 읽어 보면, 몇 가지가 또렷해집니다. 첫째, 미국처럼 넓고 분산된 시장은 직영 매장으로는 닿기 어렵습니다. 잘 짜인 라이선싱과 유통 파트너 한 줄 한 줄이, 광고 한 편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길이 됩니다. 둘째, 라이선시와 유통 파트너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 톤에 맞는 파트너에 집중하고, 어울리지 않는 곳은 과감히 정리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지킵니다. 셋째, 캐릭터든 제품이든 미국 소비자와의 일상적 접점은 이제 유튜브(YouTube)와 소셜에 있습니다. 광고 예산을 한 번에 쓰기보다, 짧은 콘텐츠로 꾸준히 이야기를 쌓는 편이 한 세대를 또 다른 세대로 이어 줍니다.
헬로키티(Hello Kitty)는 1976년의 연필꽂이에서 출발해, 세포라(Sephora) 매대와 야구장 굿즈 부스까지 갔습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운이 아니라, 매대의 종류를 바꾸고 라이선시를 정리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묵묵히 쌓아 올린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 Tokyo Scope: The Hello Kitty Comeback: Sanrio’s Three Secrets for U.S. Success
- Nippon.com: How Hello Kitty Became a Global Superstar: Talking Strategy with Ray Hatoyama
- Branding Strategy Insider: Brand Watch: Hello Kitty
- Inc.: 4 Marketing Lessons Gleaned From Hello Kitty’s 40th Annivers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