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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가상의 얼굴이 광고판에 걸리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단순한 실험을 넘어 브랜드의 일상이 되는 시대, 그 흐름 앞에서 마케터로서 제가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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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이었습니다. 한 대표님과 마케팅 회의를 하다가 화면 한쪽에 떠 있던 광고를 같이 보게 됐습니다. 어느 패션 브랜드의 모델이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한참을 들여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사람, 진짜 사람 맞나요?” 저도 모르게 다시 확대해 봤습니다. 피부의 질감, 머리카락의 흐름, 미묘한 표정까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단번에 판단이 서지 않았거든요.

알고 보니 그 모델은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디지털 팀이 만들어 낸 가상의 얼굴이었죠. 그날 회의 끝에 대표님이 농담처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다 우리도 모델 안 쓰고 컴퓨터한테 광고 시키는 거 아니에요?” 그땐 같이 웃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농담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진지한 사업 안건이 되어 다시 제 앞에 돌아왔습니다.

실험실에 있던 존재가 광고판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습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두고 한동안은 “재밌는 시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23년쯤만 해도 이 개념을 안다는 사람이 열에 한두 명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자료를 보니 인지도가 단숨에 일곱 명 가까이로 올라섰더군요. 더 놀라운 건 실제로 이들을 캠페인에 끌어다 쓴 브랜드 비율이 몇 배로 뛰었다는 점입니다. “한번 해 볼까?”가 “어떻게 해 볼까?”로 바뀌는 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속도가 그저 유행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브랜드가 오랫동안 갈증을 느껴 온 것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상의 인물은 시차를 모릅니다. 컨디션 난조도, 갑작스러운 스케줄 충돌도, 예상 못 한 구설수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찍은 콘텐츠가 미국, 일본, 동남아에서 동시에 같은 톤으로 흘러갑니다. 마케터 입장에서 이건 “한 명의 모델을 쓰는 일”이 아니라, 일관성과 통제력이라는 두 단어를 동시에 손에 쥐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제 질문은 “할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입니다

요즘 클라이언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도입 자체를 망설이는 분은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 결이 다른 질문이 들어옵니다. “이걸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미 잘나가는 가상 인플루언서와 손을 잡는 게 나을까요?” 사실 선택지는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는 직접 만드는 길입니다.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들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온전히 우리 브랜드의 자산이 됩니다. 세계관도, 말투도, 등장하는 무대도 전부 우리가 그릴 수 있습니다. 길게 보고 가는 브랜드에게 어울리는 방식이죠. 둘째는 협업입니다. 이미 팬을 보유한 가상 인플루언서와 손을 잡는 거예요. 빠르게 시장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비교적 가볍게 털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처음 한 발을 떼는 브랜드에게 추천하는 길입니다. 셋째는 인수입니다. 잘 만들어진 솔루션이나 팀 자체를 들여오는 방식인데, 가상 인플루언서를 단발 캠페인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한 축으로 키우려는 회사가 고려할 만합니다.

저는 어느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늘 강조합니다. 어떤 길을 가든, 그 결정은 “다들 하니까”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가 5년 뒤 어떤 자산을 쥐고 있어야 하는가”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 사람 인플루언서는 이제 필요 없어지는 건가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두 존재는 잘하는 일이 다릅니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일관된 톤이 필요한 자리에 강합니다. 제품을 정확하게 시연하고, 자주 묻는 질문에 차분하게 답하고, 브랜드의 세계관을 흐트러짐 없이 보여 주는 일이요. 반면 진짜 사람은 흔들리는 눈빛, 의도치 않은 웃음, 어제 있었던 일을 풀어 놓는 진솔한 말투에서 빛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결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브랜드들은 둘을 경쟁시키지 않고 역할을 나눠 줍니다. 캠페인이 비어 있는 평소 시기에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꾸준히 브랜드의 얼굴을 비춰 줍니다. 그리고 큰 시즌이 다가오면 사람 인플루언서가 등장해 정서를 끌어올리고, 진짜 경험을 나눕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누가 어디서 음을 내는지를 잘 배치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좋은 도구일수록 “왜 쓰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얼마 전 한 글로벌 브랜드가 은퇴한 테니스 스타의 전성기 모습을 AI로 되살려 가상 경기를 보여 준 캠페인이 화제가 됐습니다. 하루 만에 조회 수가 백만 단위로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흥미로운 건 그 영상이 단순히 신기술 자랑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 안에는 “지나간 위대함을 다시 보고 싶다”는 팬들의 오래된 갈증이 있었고, 브랜드는 그 감정 위에 새로운 기술을 얹은 거죠.

저는 이 사례에서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건 기술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상 인플루언서를 만들기 전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그 이야기 안에서 가상의 존재가 진짜 사람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빠진 채로 그저 트렌드라서 만든 가상 캐릭터는, 만들어진 다음 날부터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시대가 열린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수록, 결국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가장 오래된 것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그 모습을 누구의 얼굴로 세상에 보여 주고 싶은가. 도구는 점점 늘어나지만, 그 도구를 손에 쥐는 사람의 안목은 어디서도 따로 사 올 수 없습니다.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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