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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킴의 디지털 톡톡

시즌을 놓치면 1년을 놓친다, 미국의 쇼핑 캘린더

미국의 쇼핑은 캘린더 위에서 움직입니다. 블프도 백투스쿨도 몇 달 전에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제가 겪은 이야기로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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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리테일의 달력은 소비자의 달력보다 늘 몇 달 앞서 흐릅니다. 매장에 아직 여름 세일 안내가 붙어 있을 때, 유통사 회의실에서는 이미 연말 매대의 설계가 한창이죠. 이 시차를 모르면 매년 가을에 똑같은 통화를 하게 됩니다. 몇 해 전 9월 초에 제가 받았던 전화처럼요. “스캇 님,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에 저희도 미국에서 크게 한번 붙어 보고 싶어요.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겠죠?” 저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 블랙프라이데이 준비는 지금 시작하시면 안 됩니다. 지난달에 시작하셨어야 하고요, 사실 진짜 준비는 봄에 하는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침묵의 뜻을 압니다. “아니,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 왜?”라는 억울함이죠. 미국에서 오래 마케팅을 해오면서 저는 이 표정을 정말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미국의 쇼핑은 아이디어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캘린더 위에서 움직인다고요.

미국 소비자의 지갑은 달력을 보고 열린다

한국에서 마케팅을 오래 하신 분들은 종종 놀라십니다. 미국 소비자가 얼마나 “시즌”이라는 리듬에 충실하게 사는지를요. 1월엔 새해 결심으로 운동과 건강 관련 제품이 팔리고, 봄에는 정원과 야외 활동, 여름에는 휴가, 8월엔 백투스쿨, 10월엔 할로윈, 11월엔 블프와 사이버먼데이, 12월엔 홀리데이 시즌이 이어집니다. 그 사이사이에 밸런타인,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 슈퍼볼까지 끼어 있죠.

이게 그저 마케팅 캠페인의 명분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미국의 많은 소비자는 특정 카테고리의 제품을 “그 시즌이 오기 전까지” 진지하게 사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학용품은 백투스쿨 때 몰아서, 큰 가전은 블프에, 선물은 홀리데이에. 평소에는 카트에만 담아 두고, 세일이 시작되면 그때 결제 버튼을 누르는 소비자가 정말 많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해도, 그들의 지갑은 캘린더의 특정 페이지가 넘어가야 열립니다.

블프에 팔고 싶으면 여름에 움직여야 합니다

제가 겪은 아쉬운 일 하나를 나눠 볼게요. 어떤 한국 브랜드가 미국에서 첫 홀리데이 시즌을 크게 준비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제품도 좋았고, 가격 경쟁력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와 이야기를 시작한 시점이 10월 초였습니다. 저는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은 사실상 넘긴 거라는 걸요.

왜냐하면 미국의 큰 리테일러들은 블프 프로모션을 최소 여름에 확정합니다. 인플루언서와 홀리데이 콘텐츠를 함께 하려면 늦어도 8월 말에는 브리핑이 들어가야 합니다. 아마존 광고와 리스팅 최적화도 트래픽이 몰리기 전에 후기와 랭킹이 어느 정도 쌓여 있어야 하고요. 홀리데이 기프트 가이드 매체 pitch는 대개 여름부터 시작됩니다. 결국 저희는 그해에 할 수 있는 최소한만 하고, 진짜 승부는 다음 해로 미뤘습니다. 대표님께 “한 해를 기다립시다”라고 말씀드리는 건 정말 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는 저희가 봄부터 움직였습니다. 여름에 콘텐츠 세팅을 마쳤고, 9월엔 인플루언서 시딩을 걸었고, 10월엔 리스팅과 광고를 다듬어 놨죠. 그해 홀리데이의 결과는 첫해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품이 바뀐 것도 아니고, 예산이 몇 배가 된 것도 아닙니다. 달라진 건 오직 하나, 캘린더에 맞춰 미리 움직였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준비는 몇 달 전에, 실행은 시즌보다 한발 먼저

미국 마케팅에는 조용한 룰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큰 시즌은 대개 그 시즌보다 3~6개월 앞서 준비를 시작한다는 것. 백투스쿨을 노리면 5월이면 세팅에 들어가야 하고, 홀리데이를 겨냥한다면 여름이 준비의 계절입니다. 밸런타인을 잡고 싶다면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이미 카피와 크리에이티브가 나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너무 이르지 않나요?”라고 되묻는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매번 같은 대답을 드립니다. “시즌 당일에 소비자에게 도달하려면, 그 훨씬 전부터 알고리즘과 매체와 크리에이터의 캘린더 안에 이미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에게는 하루의 세일처럼 보이지만, 그 하루를 만들기 위해 몇 달을 쌓아 올린 브랜드들이 있는 겁니다. 그 축적을 건너뛰고 당일에 등장한 브랜드는,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이미 결정을 마친 소비자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즌을 놓치는 건 매출이 아니라 1년을 놓치는 일

한국에서는 시즌을 놓쳐도 다음 달, 다다음 달에 다른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다릅니다. 백투스쿨을 놓치면 그 카테고리에서 다음 큰 파도는 이듬해 여름 끝자락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홀리데이를 놓치면 1년치 매출 중 가장 큰 조각이 통째로 지나갑니다. 시즌을 놓친다는 건 그 시즌의 매출만 놓치는 게 아니라, 그 시즌에 쌓였을 후기와 데이터와 브랜드 인지까지 함께 잃는다는 뜻입니다. 후발 주자에게는 이 누적의 격차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 미국 시장을 준비하시는 분들과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늘 캘린더 한 장을 함께 펼칩니다. 오늘이 몇 월인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다음 시즌은 무엇인지, 그 시즌까지 남은 시간을 역산해 봅니다. 그러면 “지금 뭘 해야 하는가”가 놀랄 만큼 명확해집니다. 미국 마케팅에서 가장 값비싼 실수는 잘못된 카피나 예산 배분이 아니라, 캘린더 위의 한 칸을 놓치는 일이라고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계신다면, 오늘 하루쯤은 제품 이야기나 광고 예산 이야기를 잠시 접어 두고 캘린더부터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우리 브랜드에 가장 어울리는 시즌은 언제인가. 그 시즌까지 남은 몇 달을 우리는 어떻게 쓸 것인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순간,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고, 앞으로의 그림이 훨씬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Scott Kim (스캇 킴)Calywire Inc. 창업자 · CEO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마케터입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캘리와이어를 창업했습니다. '디지털 톡톡'에서는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마케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숫자와 캠페인 너머에서 배운 진짜 인사이트를 편안한 에세이로 풀어냅니다.

이메일: scott@caly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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